유난히도 다사다난 했던 올 한해도 달랑 몇 주 남겨두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 보는데, 며칠간 이어지는 깜짝 추위는 움츠린 마음을 더 움츠리게 합니다.

겨울을 준비하는 황량해 진 들판에서 문득 늙디 늙은 어머니의 모습을 봅니다. 여민 옷 틈새로 늙어 축 처진 가슴에 한세월을 견딘 위대한 삶을 보았고, 볏짚 단과 나뭇가지를 머리에 인 모습에 세상살이의 무게가 교차합니다.

늘 양보하고 희생하면서 가족을 돌보는 평범한 어머니들의 모습 속에서 한없이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쓰다듬습니다. 그렇게 세상 속 어머니들을 볼 때마다 나는 울거나 웃었습니다. 그 안에서 나의 ‘엄마’를 느낍니다. 애잔했고 뭉클했으며 안쓰럽다가도 아름답기 그지없는 순간들이 늘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모든 모습이니 내 엄마이니 외면할 수도, 가벼이 스치거나 겉모습만 거두어 갈 수도 없습니다.

세상 모든 어머니를 보며 느꼈던 일체감은 올해로 일흔 일곱해를 살아오신 내 어머니에게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당신의 일부이자 자식으로 살아오면서 마찬가지로 ‘애잔했고 뭉클했으며 안쓰럽다가도 아름답기 그지없는’ 어머니의 삶을 한없이 바라보기만 했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족의 삶 아래로 낮추시고는 일평생을 살아내신 어머니에게 이제는 즐거운 삶을 찾아보시라고, 즐길 거리도 좀 찾아 나서시라고 괜스레 투정을 부린 적도 종종 있었습니다. 오로지 자식만을 위하는 희생의 삶을 무조건 받기만 했던 나의 부질없는 항명이자 당신에 대한 연민이 뒤섞인 감정이었을 뿐이지만.

이런 어머니도 나이 탓인지 건강을 잃으셨습니다. 병원 침상에 누워 계신 어머니를 보면서 이 비현실 같은 현실을 인정하기가 참으로 쉽지가 않습니다. 누구든 겪는 일이라며 심정을 누그러뜨려 보지만, 세상 모든 자식처럼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막막하기만 합니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아직 숨결이 있는 어머니의 몸을 가슴으로 살피는 일뿐입니다. 다만, 어머니와 나눈 오랜 시간을 더없이 귀하게 돌아보게 되는 지금, 먹먹함 속에서 확인하게 되는 당신의 존재감은 한없이 넓고 큽니다. 세상 모든 어머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