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엄연한 순행은 어쩔 수 없는가 보다.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는 처서(處暑)가 지나니 폭염이 주저앉고 신선한 기운이 사방에 가득합니다.

입추(立秋)와 백로(白露)사이에 드는 처서 절기를 농가월령가에서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칠월이라 맹추(孟秋, 초가을)되니 입추 처서 절기로다/ 화성은 서쪽으로 흐르고 미성은 중천이라/ 늦더위 있다 한들 계절을 속일소냐/ 빗소리도 가볍고 바람끝도 다르도다."

가을입니다. 아침저녁으로 바람결이 다릅니다. 이젠 더위가 남았다한들 그저 가을을 시샘하는 잔서(殘暑)일뿐. 초가을 문턱에 들어서니 하늘은 높아만 가고 구름 모양도 달라집니다. 이슬 진해지는 백로(白露)가 지나면 성급한 사람들은 길 떠날 채비에 마음이 설렙니다. 청명한 하늘, 살갗 스치는 선선한 바람. 가을여행은 남해 어디 전국 어디라도 좋습니다.

이맘때면 남해 보리암에는 상사화가 핍니다. 별빛 총총한 밤을 새워 상사화는 그렇게 곱디고운 자태를 드러냈습니다. 창선도 동대만 생활체육공원에도 코스모스가 활짝피었습니다. 가을을 기다리는 마음보다 먼저 꽃을 피워 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다랭이마을에도 하얀 팝콘을 뿌려놓은 듯, 흐드러지게 메밀꽃을 피웠습니다. 달빛을 받고 소금을 뿌려 놓은듯이 수줍게 피었네요. 바닷바람에 일렁이는 메밀꽃의 물결에 묻히는 것도 초가을 낭만여행으로 그만입니다.

라디오에는 이문세의 노래가 흘러 나옵니다. "가을이 오면 눈부신 아침 햇살에 비친 그대의 미소가 아름다워요/ 눈을 감으면 싱그런 바람 가득한 그대의 맑은 숨결이 향기로와요/ 길을 걸으면 불러보던 그 옛노래는 아직도 내 마음을 설레게 하네…"'

마음과는 다르게 태풍 '고니'가 북상해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다는 예보입니다. 그러나 지나가는 여름 끝자락의 한낱 태풍따위가 오는 가을을 막을수는 없을 겁니다. 태풍이 지나가고  그 자리에 아름다운 가을꽃들로 가득채워지는 평온한 가을날이 오기를 바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