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는 꽃 풍년입니다. 온갖 꽃들이 앞다투어 피었다가 또 집니다. 길가다가도 우두커니 서서 마냥 바라보곤 합니다. 예쁜꽃을 바라보노라면 혼미하던 머릿속이 조금씩 정리되어 흩어졌던 생각들이 하나 둘 제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여유가 생깁니다. 

꽃은 꾸밈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본색을 감추거나 위장하지 않습니다. 들판에 피어난 패랭이꽃, 망초꽃, 산비탈에 수줍은 듯이 피어 있는 진달래, 그리고 조상님 무덤가에 다소곳이 피어있는 할미꽃을 보세요. 치장하지 않아도 모두들 예쁘지 않던가요. 이들이 탐하는 것은 단비와 그리고 쏟아지는 햇볕이면 됩니다.

'화무십일홍'이란 말이 있습니다. 남송의 시인 양만리라는 사람이 처음 쓴 말이라고 합니다. 그의 시구에 '花無十日紅 人不百日好'라 했습니다. '꽃은 10일 동안 붉은 것이 없고, 사람은 매일을 한결 같이 좋을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들꽃의 매력은 낙화에 있는지 모릅니다. 때가 되면 피고, 때가 되면 집니다. 먼저 피겠다고 아우성치지 않고, 늦게 지겠다고 발버둥치지 않습니다. 나는 꽃잎이 다섯 개인데 너는 왜 여섯 잎이냐고 시비 걸지 않습니다. 나는 노란색인데 너는 왜 붉은색이냐고 싸움하지 않습니다. 키가 왜 그렇게 크냐며 심통 부리지도 않습니다. 꽃은 꽃잎을 떨구어서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를 남겨야 임무를 다했다고 믿습니다.

성공가도를 달릴 때 흔히 성공을 꽃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꽃을 피웠다'로 성공을 은유해서 표현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인생사엔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화무십일홍'이듯 인생사가 만사형통일 수만은 없습니다. 아름답게 핀 꽃이 추하게 지는 경우가 있듯이 지나친 명예욕이 인생을 좀먹는 경우를 봅니다.

신문 보기가 그렇고 TV 틀기가 겁나는 세상입니다. 인간이 영욕을 위해서 부정을 할 때 꽃은 번식을 위해서 만개합니다. 그러기에 꽃은 항상 아름다우나 인간의 몸에서는 때론 구린내가 납니다. 박각시 나방은 수 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흰독말풀이 내는 향을 감지한다고 해요. 인간의 향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굳이 드러내 놓고 선전하지 않아도 명품을 알고 있듯 평소 언행에서 서로간의 인품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노란 꽃잎을 드러내며 서로가 둘러앉아 웃음 짓는 민들레, 산비탈이 좋아 끝자락에 기대서서 하늘을 보고 웃고 있는 진달래, 외로움을 못 참는 듯 무리지어 꽃피운 개나리, 이것들을 보노라면 이렇듯 아름다운 복을 타고 났건만 우리는 제 복에 겨워 부질 없는 욕망을 안고 망망대해에서 표류를 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꽃만이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겸양을 갖추어 스스로를 낮은 자리로 내리고,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 이는 분명 꽃보다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우리는 자연 앞에서 경건해질 때 자연은 무한한 에너지를 인간에게 쏟아놓게 됩니다. 꽃들이 다 지기 전에 우리는 이제 인간 본성으로 되돌아가 자연이 만들어 내는 향기에 같이 동화되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