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에 모처럼 영화를 봤습니다. 바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입니다.

영화는 많은 상업영화에서처럼 극적이거나 요란하거나 난리법석이거나 하지 않게 죽음도 일상처럼 다가와 우리 앞에 마주 섭니다. 처마 위로 줄곧 내리는 빗줄기마냥 조용히, 그리고 언제 왔었느냐는 듯 아무도 모르게 삶도 그칩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98세 할아버지 조병만도 그렇게 89세의 사랑하는 여인 강계열을 두고 홀로 떠납니다. 강원도 횡성에서 살아가는 이 할아버지는, 영화 속에서, 요 바로 직전까지 할머니에게 꽃을 꺾어주고, 낙엽을 가지고 장난도 치기도 했으며, 아이들처럼 눈싸움도 하고 놀았었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한치의 오차도 없다는 듯 순식간에 다가섭니다. 할머니는 그런 그를 위해 끊임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다큐멘터리로 흐르는 이 영화는 한마디로 말해서 ‘노인 멜로 드라마’입니다. 아마도 시작은 100세 가깝게 장수하고 있는 할아버지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됐을 것입니다. 100세 노인의 일상은 도대체 어떻게 진행될까요. 그런데 막상 카메라를 설치하고 그걸 들여다보고 있자니 예상과는 다른 풍경들이 나타났을 것입니다. 할아버지의 로맨스가 예사롭지가 않았을 것입니다.

노인들도 여전히 사랑하며 살아갈까요. 그럴 수 있을까요. 부부가 75년인가, 76년인가를 살았다고 하는데 그런 이들에게도 여전히 애정이라는 게 남아 있을까요. 이미 원수처럼,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되어 있지는 않을까요. 적어도 조병만, 강계열 부부에게 만큼은 그 얘기가 적용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들의 사랑은 아직도 펄펄 숨 쉽니다. 특히 남자에 대한 여자의 사랑이 눈물겹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그렇지만, 나이와 상관이 없습니다. 가진 것과, 생김생김과, 지식이 얼마나 있느냐 없느냐 와도 별 상관이 없습니다. 사랑은 젊으나 늙으나 늘 순수한 법입니다.

그렇다고 이다지도 주름이 깊게 핀 노인들의 러브 스토리가 큰 인기를 얻을 것이라고는 쉽게 예측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현재 입 소문에 흥분제라도 섞어 놓은 양 영화 팬들 사이에서 ‘필견’의 작품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한국 영화로는 현재 박스오피스 1위이며 전체 영화로 놓고 봤을 때도 장기 흥행 중인 ‘인터스텔라’의 뒤를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이건 좀 비정상이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일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 안에는 예상을 깨고 20대 관객들이 넘쳐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아버지 세대에 대한 부채의식을 뛰어 넘어 그 전 세대에 대해서까지 이해의 폭을 넓혀 가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 다큐멘터리에는 뜻하지 않게 흥행요소 몇 가지가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일단 TV 휴먼 다큐멘터리를 통해 한 차례 소개된 아이템이라는 것이 대중적 검증 망을 비교적 쉽게 통과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노인들의 이야기일지라도 멜로 드라마적 특성을 강하게 앞장세우고 있다는 점이 주효했습니다. 무엇보다 차분하고 감성적인 스타일의 촬영이 사람들의 마음을 오히려 더 크게 움직이게 한 것처럼 보입니다. 감독의 카메라는 비교적 정통 다큐의 그것답게 ‘담담한 응시’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가능한 한 관계나 사건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위해 카메라를 움직이지 않고 고정된 쇼트로 찍어 나갑니다. 익스트림 클로즈업은 거의 완전하게 배제했으며 되도록이면 거리를 두고, 길게 찍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완벽한 소격효과(疎隔效果 : 관객이 배우의 연극에 몰입되지 않아야만 비판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다는 주장에서 나온,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만든 개념)가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다큐 속 노인 둘과 나 자신의 관계를 차분하게 정리할 수 있게 됩니다. 다큐멘터리가 만들어 줘야 할 ‘고독한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되는 셈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특히 냉소적인 사람들에게는, 영화가 다소 보수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없지 않지만, 젊은 관객들이 열광하게 하는 요소가 충분해 보입니다.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거대 담론의 필요성을 부인하고 개인의 행복과 이기적인 욕망의 실현을 더 우선시 하게 된 결과로 보입니다. 뭐,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요.

그럼, 무억이 대중들로 하여금은 손수건을 챙겨 영화관으로 향하게 했을까요. 이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쳇말로 ‘울고 싶은데 뺨 때린’ 영화들이 가진 힘에 새삼 놀라게 됩니다. 물론 이 독립 다큐멘터리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가치를 지니는 영화지만 그것이 신드롬의 차원으로 이어진 데는 외적인 요인이 적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작년 말에 개봉해 올해 초에 신드롬을 이끌었던 <변호인>이나 올 여름 신드롬을 만든 <명량>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적인 가치를 떠나 이들 작품들은 모두 현실의 대중들이 갖고 있던 정서의 뇌관을 건드렸다는 점입니다. <변호인>이 서민들을 향해 있지 않은 법 정의의 문제로 대중들을 울렸다면, <명량>은 세월호 정국으로 드러난 리더십 부재의 현실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이순신이라는 영웅을 소환했습니다. 영화를 보러간다기보다는 억눌린 정서를 잠시나마 풀어내기 위해서 일거라 생각됩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 신드롬 역시 이 흐름과 맞닿아 있을 것입니다. 유난히 많은 사건사고들로 점철된 한 해를 겪어내며 애써 눈물을 참아왔던 대중들이 아닌가요. 이 영화는 마치 그 한 해를 참았던 묶은 눈물들을 쏟아내는 일종의 ‘씻김굿’의 현장처럼 다가왔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입소문에 의해 그 내용들을 거의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일까요. 이 영화는 내용을 확인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 안에 들어가 비로소 함께 울고 있다는 그 공존의 위안을 갖는다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한 일입니다.

거기에서 모두를 함께 울게 만드는 힘이 나옵니다. 그건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사랑과 이별, 죽음 같은 우리네 삶의 본질적인 것들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모두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죽음 앞에 서서야 비로소 보이는 삶의 본질. 거기에 헛된 욕망들이 만들어내는 삶의 좌절들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취업전쟁과 팍팍해진 현실, 경제적 불황과 양극화 같은 좌절들마저 죽음 앞에서는 소소해집니다.

모든 것은 현실로부터 탈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현실이 가려놓은 삶의 본질로 들어가는 일일 것입니다. 그 아름다움이 주는 감동은 그것이 우리가 진짜 살아가야할 본질이라는 깨달음과 함께 더욱 큰 울림을 갖습니다.

오랜만에 모인 자식들이 의견다툼을 벌이는 모습을 보며 이제 죽음을 앞둔 어르신이 그 메마른 눈에서 펑펑 눈물을 쏟는 모습은 그래서 삶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겉돌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얼마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강을 건너가려는 님을 앞에 두고서야 비로소 그 님이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지를 깨닫는 것이 우리네 미천한 삶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님이란 존재는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우리네 소중한 삶 그 자체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니 삶이 힘들고 지쳐서 도무지 견디기 힘든 서민들이 작정하듯 손수건 하나씩을 들고 이 영화관을 찾는 것일 것입니다. 영화는 내내 웃음과 눈물을 주고 우리네 삶의 본질을 찾는 시간이 됩니다. 먹먹한 감동에 영화관을 나서는 발길이 들어갈 때보다 가벼워져 있는 건 그래서 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