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는 일이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상의 무엇일 거라고 생각하며 그 무엇을 찾아 헤매다가 오십을 넘기게 되었습니다. 빗질을 하는데 중간 중간 새치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많은 희끗거리는 머리카락이 가끔 서글퍼 질때도 있습니다. 새순이 나고 노란꽃을 피워 어느덧 이렇게 붉게 익은 열매가 떨어질때면, 인생이 가을도 생각해 보게 되죠.
　
그래 그런지 '열매'라는 단어가 친근합니다. 무엇을 결실을 의미할 때는 곧잘 열매에 비견합니다. 삶의 성공은 '열매'로 다가와 발갛게 잘 익은 사과 하나를 손에 쥔 듯 뿌듯하고, 친구 자녀가 좋은 학교에 들어 갔다는 소식이 탐스럽게 잘 익은 향긋한 '열매'로 안겨져 그 동안 고생했던 마음고생에 대해 서로를 위로하며 좋아합니다. 가을 동창 모임에 나오라는 연락이 오면 모임의 배경이 되어 주겠다는 마음으로 흔쾌히 참석한다는 친구의 말을 들으며,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의 마음에 결실된 귀한 '열매'로 느껴져 존경의 마음이 솟습니다.

올 가을에 거둔 열매 중 중요한 열매는, 생각과 마음이 하나가 아니라는 발견입니다. 생각은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하는데 마음은 제 자리에 눌러 앉아 있기를 원합니다. '저 풀을 뽑아야 하는데', ‘저 일을 오늘 해야 하는데’라고 생각하지만 마음이 미동도 하지 않아 공수표를 날리거나, 마지못해 시간에 끌려가는 형국으로 일을 하거나 하는 것이 내 삶이었습니다. 활기가 부족하고, '소극적'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그게 나인 줄 알고 살아온 반평생이 투명하게 보이는 가을입니다.